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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충주호는 우리나라 최대의 다목적댐으로 충주, 제천, 단양을 잇는 97㎢의 면적으로 담수면적이 가장 넓은 인공호수이다.
호수주변에는 월악산국립공원과 금수산, 옥순봉, 구담봉 등 단양팔경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어 사철 변하는 모습이 푸른 물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충주호 수상관광을 즐기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충주호관광선
충주에서 신단양까지 53km의 환상적 뱃길을 안내하는 관광선은 월악-청풍-장회-신단양 코스와 월악-충주코스, 장회-청풍왕복의 3개관광코스를 운행하며 4월에서 10월 중에는 09:00~17:00 까지 11월~3월 중에는 9:30~16:00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함을 원칙으로 하나 비수기 등 이용객이 없을시에는 운행간격이 유동적이 될 수 있습니다.

수안보 온천은 천연의 온천이며, 자연적으로 용출한 전국 최초의 온천으로 온천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사에 (有溫泉)라고 현종9년(AD1018)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며, 이밖에 이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청구도, 대동여지도등 30여종의 역사책에 기록을 남긴 유서깊은 온천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의 부마였던 연창위 안맹담과 세조때 우의정 권남 그리고 숙종때의 명유 권상하등 여러 선비와 전국에서 운집한 욕객들로 사철 붐비었다는 사실을 \'온정동 동규 절목\'에서 잘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병원이 없었던 당시 각종 환자들이 전국에서 몰려 들었다고 합니다.

근대 온천으로 발전한 것은 1885년 노천식 욕조를 설치하고 1929년 현대식 장비를 사용한 온천공 굴착으로 인하여 온천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용이 따뜻한 곳을 찾아 이곳에서 겨울을 나던중 병을 고치고 힘이 세어져 하늘로 승천하려다 끝내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는 슬픈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온천의 특징
수안보 온천수는 지하 250m에서 용출되는 수온 53℃ 산도 8.3의 약 알카리성 온천 원액으로 리듐을 비롯한 칼슘, 나트륨, 불소, 마그네슘등 인체에 이로운 각종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수질이 부드러우며 경쾌합니다.

온천수는 지층의 구조가 그 온천의 성분을 좌우하는데 수안보 온천지대의 지층은 옥천계의 천매암층으로 퇴적암계의 맥반석이 주 지층을 형성하고 있어 원적외선 (Bio Stoxe) 뿐 아니라 각종 광물질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인체에 유익한 세계적인 온천수 입니다.

수안보 온천수는 살아 활동하고 있는 생동하는 온천수로 한달 이상 썩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온천수로 온천욕을 하면 세포 노화를지연하는 효과가 있어 젊음을 오래 보전 할 수 있습니다.

수안보 온천수로 술을 빚거나 김치 등 음식을 요리하면 신선도가 오래 지속되며 색깔과 맛이 독특합니다.

수안보 온천수로 콩나물과 금붕어를 기른 결과, 콩나물은 오래도록 신선도를 유지하였으며, 금붕어는 성장속도가 빠르고 색깔이 선명함이 입증되었습니다.

수안보 온천수는 욕수는 물론 식수로도 적합하며 인체의 산성 체질을 알카리성 체질로 바꾸는 효과가 있습니다.

선사·삼국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중심부에 위치해 남한강의 중상류와 금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꽃피운 문화를 \'중원문화\'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그 중심지가 바로 충주인 것이다. 중원(中原)이란 \" 넓은들 가운데\"라는 의미와 \"나라의 중심\", \"천하의 중심\" 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때문에 충주는 긍지를 가진 역사의 고장이며 문화시민이 사는 고장이라는 긍지를 가진 도시이다. 충주가 곧 중심 고을이 되기 때문이다. 이 중심고을을 의미하는 뚜렷한 증거가 바로 국보 제6호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이다.

흔히 중앙탑이라고 부르는데 이 탑을 세운 시기가 이미 오래전인 통일신라시대(9세기 중엽)인 것이다.
고구려가 중원지방을 장악한 시기는 장수왕때인 475~491년경으로서 이곳을 국원성이라 칭했다.
\"나라의 근원이 되는 땅\" \"나라의 처음 본디가 되는 땅\"의 의미로 고구려는 이 국원성을 남방진출의 전진기지로 삼고 이를 기념하고 상징하는 비를 세웠는데 그 비가 바로 국보 제205호인 중원고구려비이다.

이후 우여곡절끝에 신라는 중원을 확보하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며 경주 다음의 도시로 대접하여 국원소경,중원소경이라는 이름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중원(충주)은 남북의 요충으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인곳이며 예로부터 양질의 철이 생산된 우리나라 3대 철산지중의 한 곳이었다.
이렇듯이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고장이라는 이유로 삼국의 각축장이 되었던 충주는 아직도 그 주변에 많은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비록 깨지고, 부서지고, 무너져내려 당시의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삼국의 많은 문화재가 현재 계승되어 살아 숨쉬는 고장이다.

월악산 국립공원내에 위치한 계곡들은 타지역의 계곡에 비하여 큰 특색이 있으니 그것은 바위들이 일명 너럭바위 또는 떡바위라고 하듯이 하나하나의 바위들이 한결같이 크고 넓게 퍼져있어 찿는이에게 자연휴식처를 제공해 준다. 그 중 송계계곡은 월악산(1,094m)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가히 여름더위를 잊을 수 있는 백미로 꼽히고 있으며 특히,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은 얼음처럼 차가와 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많은 피서객들이 찾고 있다.

계곡내에는 월악영봉을 비롯하여 자연대, 월광폭포, 학소대, 망폭대, 수경대, 와룡대, 팔랑소 등 송계팔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외에도 천연기념물 제337호인 망개나무, 덕주사, 미륵리사지등의 관광명소가 흩어져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1979년 2월 25일 문화재 애호 단체인 [예성동우회]에서 발견 같은 해 4월 8일 서울 단국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확인된 고구려 시대의 석비다.

고구려비는 4면에 글씨를 새기고 앞면 10행 23자씩이고 왼쪽면 7행 23자가 새겨저 있고 후면 9행, 우측면 6행으로 4면 전체 700여자가새겨저 있으며 현재는 200여자만 남아있다.

비문의 내용은 확실치 않으나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문제로 다투다가 화해를 한 기념으로 세워진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쌍방화친을 하면서 고구려가 형이되고 신라는 아우가 된다는 뜻이 있다.

가야국의 우륵이 음악을 잘 한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 진흥왕12년에 가약국의 그를 불러 기악을 탄주하였는데 그 음율이 미묘하므로 제자들과 같이 충주에 거처하게 하고 제자들에게 재예를 습득하게 하였다. 그때에 우륵이 탄주하던 금(禁)이 가야국에서 전래된 것이라하여 가야금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또한 당시 대문산에서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 하여 지금의 탄금대로 고쳐불리우게 되었다.
가야금을 가지고 우륵이 당시 음악예술의 꽃을 피운 발상지가 충주인 것이다.

수주팔봉은 높이가 493m로 충북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얕으막 하지만 날카로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그 위세가 당당하다.

등산코스
향산마을(40분/1.2km)→두릉산(20분/0.6km)→권감찰사무덤(30분/0.7km)→정상(20분/0.6km)→사거리안부(30분/0.9km)→토계리산행거리 4km, 약 2시간 20분 소요

월악산은 높이 1,097m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과 제천시 한수면 일대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총면적 284.5㎢로서 2개도 4개 시군 9개읍면 34개리에 걸쳐 있는 산이며 해발 1,097m의 월악영봉을 비롯하여 150여m의 기암단애가 치솟아 맹호처럼 우뚝 선 준험한 산세와 웅장함으로 예로부터 영산이라 불리어 왔다.

깍아지른 산줄기는 끝을 모르고 내리뻗어 사이사이로 운치있게 자란 청송과 기묘한 암반길을 지나 주봉에 올라보면 잔잔한 충주호와 산야풍치가 눈 아래 사이에 전개되고 사방으로 창공이 상쾌하여 진다. 인근에는 송계계곡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는 맞 볼 수 없는 여러개의 계곡들이 있으며 인근 수안보에서 온천욕을 겸할 수 있고 충주호 유람도 가능하여 내륙관광으로는 최고의 절정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등산코스
1. 수안보→휴게소→덕주사(5.9km)→마애불→자연등산로→영봉→내송계
2. 내송계(4.3km)→헬기장→영봉→자연등산로→마애블→덕주사→휴게소
3. 월악리→신륵사(5.4km)→영봉→자연등산로→마애블→덕주사→휴게소
4. 수산리→보덕암(6.2km)→공룡능선→영봉→마애블→덕주사→휴게소

계명산은 충북 충주시 안림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774m로 충주시내 동북편에 위치한 산으로 산세도 절경이지만 산위에 올라 충주호를 굽어 보는 경관이 아름다운 산이다.

마즈막재를 가운데 두고 동북쪽에 계명산이, 남동쪽에는 남산(636m)이 충주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그 운치를 더 해주며 시내에서 가깝기 때문에 시민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토질이 비옥하고 일조환경이 좋아 이 산기슭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품질로 인정을 받고 있다.

등산코스
1. 마즈막재(30분/1km)→주능선쉼터(20분/0.5km)→정상(85분/1.5km)→돌무더기(60분/2.2km)→종민동(하동마을) : 산행거리 4.8km 약 3시간 소요
2. 약막마을(20분/1km)→2층농가(50분/1.1km)→정상밑안부(10분/0.3km)→정상(20분/0.5km)→서쪽능선701고지(40분/2km)→동편마을 : 산행거리 4.9km 약 2시간 20분 소요

법경대사는 신라말부터 고려초기에 살았던 고승이다. 헌강왕 5년(879)에 태어났으며 성은 이씨이다. 17세때에 삭발하고, 가야산에 입산수도 하였으며 효공왕 10년 (906)에 당나라로 들어가 각 사원을 순회수도한 후 효공왕 16년(912)에 귀국하여 충주 정토사에 와서 포교에 힘썼다.

고려 태조 왕건이 국사로 추대하였으며 63세의 나이로 태조 24년(941)에 입적하였다. 시호를 법경이라 하였으며 대사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최언위가 글을 짓고 명필가 구족달이 쓰고 태조 26년(943)에 이 비석을 건립하였다. 주변의 정토사지는 수몰 지역내의 문화유적으로 1983년도 여름에 발굴하여 당시의 사찰규모를 확인하게 되었으나 그 주초가 원형대로 이곳에 옮겨져 보관되어 있다. 절터에서는『』『』등 명문이 있는 기와와 연화문 및 귀면와 등이 다수 출토되기도 하였다.

이곳에 있었던 국보 제102호인 홍법국사 실상탑과 탑비는 1915년에 서울 경북궁으로 옮겨졌다. 이 부도는 독특한 조각을 하여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법경대사자등탑은 일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고 하는데 그 위치에는 길이 180cm, 두께 30cm 정도의 잘 다듬어진 초층 기단석이 있으며 흥법국사실상탑이 있던 위치에는 140cm 길이에 폭 50cm의 연화문석등 대석이 있다. 흥법국사실상탑의 건립은 고려 현종 8년(1017)이다.